삶의 지혜가 깃든 
이 말 한마디가
더위를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 권혁찬 전 회장
평택문인협회

작열하는 태양의 맹위가 두려운 오후 가끔 불어주는 숲속바람이 고마운 계절이다. 한해의 더위가 절정인 중복이다. 삼복더위 중에 말복 더위에 비하랴 만은 그래도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오히려 말복은 초복이나 중복보다 덜 덥다 하였다.

절기상 대서가 지났다. 그다음 절기는 입추이다. 가을로 접어든다는 의미이다. 입추 절은 중복과 말복 사이에 있는 절기이다. 며칠 후면 음력 7월로 접어든다. 옛 속담에 ‘어정 7월 건들 8월’이란 말이 있다. 한낮의 더위가 이마를 가르는 여름 오후에는 야외작업이나 뙤약볕이 내리쬐는 길을 다니기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의 음력 7월은 더욱 그러하다. 한해의 더위가 극렬 하는 시기와 하루의 열기가 충천하는 시간대가 그들의 주 활동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최근 온열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농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그런저런 까닭으로 유래되어 만들어진 속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미 절정이던 더위가 오히려 이쯤 되면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할 때를 서둘러 맞이하고픈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듯도 하다. 시기적으로 요맘때가 되면 봄부터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던 농사일도 조금은 완만해지면서 더위도 피할 겸 추수도 기다릴 겸하여 어정어정 뒷짐을 지고 그동안 심어놓은 곡식들이 익어가는 모습만 바라보아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어정 7월이란 말이 생겨난 듯하다.

그런가하면 더위를 이기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기도 한 말이다. 열심히 일한 뒤에 성과를 기다리며 기다릴 줄 아는 여유로움과 급함이 없이 완만한 인내가 풍작을 약속한다는 신념도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요즘 우리는 세상의 열기들이 한여름 폭염만큼이나 뜨거운 시절을 살고 있다. 세계적 경제 불황과 안보 불안정 등 거론하고 싶지 않은 현안들이지만, 우리들 피부에 뜨거운 태양처럼 와 닿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시간이 가면 시절이 바뀌는 법이고, 시절이 바뀌면 계절도 변하여 뜨거웠던 폭염도 청량한 가을바람에 밀려가는 이치를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이 어렵고 뜨거운 시절도 계절이 바뀌면서 점차 그 평온을 찾아갈 것이 분명하다. 이러할 때 필요한 지혜가 듬뿍 담긴 속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건들 8월의 의미는 두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어정어정 뒷짐 지고 7월을 보내고 뒤이어 건들건들 8월을 보내다 보면 어렵고 힘든 날이 지나간다는 의미로 귀결되지만, 그 속사정은 다르다. 바쁜 7월을 건성으로 보냈으니 밀린 일들이 지천에 산재해 있음을 이미 알고 있기에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정 7월에 이어 건들대는 듯 해 보이지만, 서둘러 추수를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바삐 움직이다 보니 건들거리는 것으로 비친다는 뜻이리라 생각한다. 그 이유를 뒷받침하는 말로 일부에서는 ‘동동 8월’이라 부르기도 한다. 7월에 밀린 일을 서둘러 따라잡기 위해 발걸음을 동동 거리는 시절이라는 뜻이다.

추수를 앞두고 상기된 농부의 열기가 한여름 더위보다 더 뜨거워질 때쯤이면 세상의 뜨거운 화제들도 서서히 식어갈 것이다. ‘어정 7월 건들 8월’이면 어떻고, ‘동동 8월’이면 어떠하겠는가. 삶의 지혜가 깃든 이 말 한마디가 더위를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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