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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창 의사 추도식 49년 만에 묘소에서 거행

기사승인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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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대전국립현충원, 원심창 의사 49주기 추모식
시민·선양회원·유족 등 참석, 의사 선양사업 확대 약속


 

   
 

 

1971년 7월 4일 독립운동가 원심창 의사가 서거한 후 49년 만에 처음으로 의사가 묻힌 대전국립현충원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평택시와 원심창의사기념사업회는 7월 4일 오전 11시 대전국립현충원 제1애국지사묘역 404호 원심창 의사 묘역에서 유족과 선양회원, 내빈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원심창 의사 49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

이날 추모식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평택 출신 독립운동가 원심창 의사를 기리기 위해 이른 아침 평택에서 출발한 평택시민과 전국 각지의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 회원들의 참여 속에 엄숙하게 진행됐다.

원심창 의사는 1906년 12월 1일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175번지에서 태어나 평택성동초등학교의 전신인 평택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1919년 4월 1일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평택역 3·1만세운동에 참여하며 독립 의지를 불태웠다.

의사는 1933년 3월 17일 백정기·이강훈 등과 함께 중국 상해에서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 폭살을 계획한 ‘육삼정 의거’의 주역으로 참여했다가 거사 직전 발각·체포돼 일본 감옥에서 13년간 복역하다 1945년에 출소했다.

육삼정 의거는 윤봉길·이봉창 의거와 함께 일제강점기 해외 3대 의거 중 하나로 기록됐지만 밀고자에 의해 발각돼 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원심창 의사는 일본 감옥에서 출소 이후 재일거류민단을 만들어 재일동포 권익증진에도 앞장섰으며, 해외 최초 평화통일운동 조직인 ‘통협’을 결성하고, 일본 최대 교포신문 <통일일보>의 초대 회장을 맡아 평생을 평화통일운동에 헌신했다.

원심창의사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이날 추모제는 원심창 의사의 항일독립정신을 추모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것으로 김기성 원심창의사기념사업회장과 권영화 수석부회장을 비롯해 홍기원 국회의원과 홍선의 평택시의회 의장, 유승영·이종한·곽미연 평택시의회 의원, 원형재 유족대표, 유족과 보훈단체 회원,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원심창 의사 약전 봉독, 추모사, 유족대표 인사, 헌화, 분향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김기성 원심창의사기념사업회장은 이날 추도사를 통해 “일제는 원심창 의사가 1933년 3월 17일 육삼정 의거로 피체되었을 때 사건을 중대하게 여겨 백정기, 이강훈 의사와 함께 일본으로 압송해 무기징역이라는 형량을 선고했으며, 모진 악형을 이겨내야 했다”며, “여기 애국지사를 모신 대전국립현충원을 둘러보며 느낀 것은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생을 몸 바친 원심창 의사의 활동에 숙연해지는 마음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홍기원 국회의원은 추도사에서 “우리 평택에도 원심창 의사와 같이 훌륭한 독립운동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의사의 업적에 기리기 위해 선양사업을 충실히 해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 후대들의 도리”라고 강조했다.

   
 
   
 
   
 
   
 

 

박성복 기자 sbbark@korea.com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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