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할 터”

 

1994년 평택 정착, 2019년 자동차검사소 개소
지영희기념사업회 활동, 지역사회에 봉사할 것

 

 

“고객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기술을 배우다

이용기(59세) 평택자동차검사소 대표는 경기도 하남시 초일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시발택시를 운영하셨고, 나중에는 서울 영등포에서 철공소를 운영하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죠”

이용기 대표는 중학교 3년 내내 신문 배달을 하며 어려운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남들에게 친절을 베풀면, 분명 그만큼 되돌아온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신문을 던지지 않고 초인종을 눌러 직접 고객에게 전달했는데, 덕분에 남들보다 수금을 잘 할 수 있었죠”

그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공업고등학교 자동차학과에 진학했다.

“빨리 취업해서 돈을 벌려면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 정비기능사 2급 자격증을 땄고, 졸업 후 서울 장안동의 한 공장에서 일했죠”

이용기 대표는 군에 다녀온 뒤 강남구 역삼동의 한 자동차정비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그는 20대 중반에 정비기능사 1급과 도로교통안전관리자 자격증을 취득했고, 1987년 대한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에 입사했다.

“보험회사에서는 교통사고 처리·보상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8년 정도 근무하면서 손해사정사 자격증을 얻기도 했죠”

 

평택에 정착하다

이용기 대표는 1994년 발령을 받아 평택·안성 지역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했다.

“정비소가 보험과 관련해 청구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고 이 지역에서 손해사정사 일을 하면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퇴사한 뒤 비전동에 손해사정사 사무소를 차렸죠”

주 업무는 정비소에서 보험수리 한 비용을 보험회사에 대신 청구하는 일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평택에는 손해사정사 사무소가 없었기에 그는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정비소 직원들이 손해사정 업무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곤 했습니다. 결국 제 사업엔 마이너스가 되는 일이었지만, 노하우와 기술을 아낌없이 알려주었죠”

1997년 보험사에서 개발한 전산시스템이 보급되면서 손해사정 업무의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까지 터지면서 이용기 대표는 1998년 사업을 접었다.

3~4년간 폐차장에서 일한 그는 2001년 렌터카 사업을 시작하며 재기를 꿈꿨다.

“당시 렌터카 사업이 막 부흥할 시기였습니다. 평택에도 작은 업체가 몇 곳 있었는데, 저는 더 크게 사업을 시작했고, 그 결과 사업 반경이 안중, 송탄부터 평택, 안성 지역까지 굉장히 방대했죠”

이용기 대표는 추석, 설 연휴 나흘 정도를 제외하고는 일 년 내내 24시간 쉬지 않고 일했다. 

“제게 손해사정 업무를 배웠던 정비소 직원들이 거래처로 저희 사업장을 많이 찾았습니다. 제가 도움을 줬던 만큼 다시 도움을 받은 것이죠”

 

지역사회와 동행

이용기 대표는 2019년 7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인근 현재 자리에서 평택자동차검사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임대 중이었던 부지에 정비공장이 있었는데, 계약이 만료되면서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가 자동차검사소를 세웠습니다. 렌터카 사업은 업체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2020년 12월 그만두게 됐죠”

그는 직원들에게 친절이 최고의 서비스라는 점을 항상 강조한다.

“저희 업무가 결국 고객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친절하게 꼼꼼히 점검해서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입소문이 나서 많은 고객이 저희 검사소를 찾고 계시죠”

이용기 대표는 고객에게 믿음과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객이 재방문할 수 있도록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불합격 요인에 대해서는 무료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아무 연고도 없던 평택에 정착해 20년이 훌쩍 넘도록 사업을 이어온 이용기 대표는 지금까지 도움 받아온 만큼, 사랑받아온 만큼 지역사회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실제로 그는 지인들과 함께 오랜 기간 보육원 아동을 후원해왔으며, 지난해부터는 지영희기념사업회 이사로 활동하며 평택이 낳은 국악의 거장 지영희 선생을 선양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소박하게나마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그는 앞만 보고 달려온 만큼 아내와 함께 여유 있는 삶을 영위하고 싶다고도 말한다. 소박한 이용기 대표의 바람이 이뤄져 행복한 나날이 그의 미래에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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