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상, 평택 정치·문화·교육계의 큰 별이 지다

 

학교 설립~JC회장~문화원장~경기도의회 부의장 등 역임
평택 지역발전 위해 노력한 업적, 지역 곳곳에 족적 남겨


다양한 방면에서 평택지역 발전을 위해 힘써왔던 이주상 전 경기도의회 부의장이 3월 28일 향년 80세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이주상 부의장은 지난해 <평택시사신문>이 주최한 ‘제5회 평택봉사대상’을 수상했으며 마지막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생전 소장품들을 최근 평택문화원에 기증했다. 또한 가장 큰 소원이라고 말했던 평택항 경계분쟁에서 평택시가 승소하는 모습까지 지켜본 후 <평택시사신문>과의 마지막 인터뷰를 끝으로 영면에 들었다.
1941년생인 이주상 부의장은 평택 내기초등학교, 안중중학교, 서울 성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정치학과 정치학사, 중앙대학교 산업경영대학원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부터 내무부장관 표창, 문화공보부장관 표창, 경기도지사 표창을 받았고, 2009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평택청년회의소 회장, 한국청소년회의소 중앙회 이사, 평택문화원장, 경기도의회 부의장, 평택시교육발전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평택상공회의소 창립에도 기여했다. 
<평택시사신문>은 생전 고인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을 평택시민과 함께 돌이켜본다.  -편집자 주 -

 

▲ 제3대 평택문화원장 활동

 

■ 교육을 향한 특별한 애정
평택시 포승읍 바닷가 마을 만호리 이장의 아들로 태어난 이주상 부의장은 한학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완고한 벽에 부딪쳐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학업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이주상 부의장은 내기초등학교에서 공민학교를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 몰래 1년을 다녔고 이후 내기초등학교 5학년으로 편입해서 졸업장을 받았다. 친구들보다 한참 늦게 공부를 시작했지만 배움에 대한 일념으로 밭에서 일하다 신발도 못 신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기도 했다. 만호리에서 안중까지 1시간 가까이 걸어서 안중중학교에 다녔고, 전체 2등의 성적으로 서울 성남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졸업한 후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꿈꾸었지만 나이 제한에 걸려 탈락했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학비를 마련해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했다. 

 

▲ 경기JC 지구대회 참석(왼쪽 세 번째)

 

■ 포승중학교 전신 상록재건학교 설립
대학 3학년이 된 그는 고향인 평택에 내려와 ‘청록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농촌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야학을 시작했다. 남들과 같은 길을 걷기 싫다는 의지였고 뜻을 찾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보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신처럼 배우고 싶어도 배울 기회가 없었던 학생들을 위해 열정을 쏟아 부었다. 이어 중학교 교과과정을 개설하기 위해 평택 서부 4개 면을 대상으로 포승면회의실을 빌려 야학을 시작했다. 
이주상 부의장은 친구의 부친이 현재 포승중학교 부지를 사서 기부한 덕분에 그 자리에 ‘상록재건학교’를 설립할 수 있었다. 건물을 지을 목재도 없어 밤이면 아이들과 산에 올라 나무를 베어다가 교실 두 칸을 마련하고 이름도 아이들의 꿈을 이루게 해 줄 ‘상록재건학교’로 했다. 상록재건학교는 지금의 포승중학교 전신이다. 이후에는 안중에 세운 태삼재건중학교의 교장으로 재임하며 교육을 받지 못한 청년들을 가르쳤고, 1979년부터 1980년까지는 제28대 평택청년회의소 회장과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 이사를 역임했다. 

 

▲ 평택문화원에 기증한 이주상 부의장 소장 사료

■ 평택지역 안팎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
재건학교를 떠나 평택시내로 나오게 된 이주상 부의장은 1970년대 평택문화원 창립에 참여해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제3대 평택문화원장으로 활동하며 전국 최고의 문화원을 만들었다. 당시 평택문화원 사무실은 평택역 앞 삼일사 약국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주상 부의장은 원장 재임 당시 평택 출신 농악명인 최은창 선생과 천안에서 활동하던 이돌천 선생을 등을 모셔와 지금의 평택농악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러한 기틀을 바탕으로 평택농악은 이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을 수 있었고, 현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이주상 부의장은 1978년 평택상공회의소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산파역할을 했으며, 1988년부터 1995년까지 평택농지개량조합장 3선, 농지개량조합연합회 중앙협의회 부회장, 평택시의료보험조합 대표이사, 평택시체육회 자문위원, 평택시장애인협회 이사장 등 평택 안팎을 넘나들며 많은 활동을 이어갔다. 

 

▲ 제19회 평택교육대상 시상식 기념사

 

■ 평택군수의 꿈 대신 경기도의원 당선
이주상 부의장은 평택군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평택문화원장 임기를 마치고 1988년부터 평택농지개량조합장으로 활동하던 중 1995년 평택군수 선거 대신 평택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차점자로 낙선했다. 선거를 한 달 앞두고 평택군, 평택시, 송탄시 등 3개 시·군이 통합되면서 당내 공천에서 밀려난 것이다.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1만 표 차이로 패했고 다음 선거에서도 소속 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평택시장의 꿈을 접어야 했다. 대신 경기도의원 선거에 출마해 2006년 제6대 경기도의원에 당선됐으며, 이후 7대까지 연임하면서 경기도의회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임기 말에는 교육위원회에 속해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시만 해도 파격적이라 여겨졌던 무상급식론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서민이 많은 읍·면 지역에서는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학교까지 무상급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 3월에는 경기도내 31개 시·군에 ‘아이낳기좋은세상운동본부’를 설치하고, 평택지역 18개 교육기관에 432억 원을 지원하도록 해서 교육환경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제8회 율곡대상 광역정치부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평택시사신문 제정 제5회 평택봉사대상 수상(오른쪽 첫 번째)

 

■ 평택시교육발전협의회장 활동
이주상 부의장은 경기도의회 의원 임기가 끝난 뒤 2009년부터 평택시교육발전협의회장으로 활동했다. 매년 평택지역에서 6명의 모범교육자를 선정해 표창했고, 각 학교마다 교장 연수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다. 평택지역에 교육인프라가 열악하다는 것을 간파한 이주상 부의장은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자치단체가 적극 나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생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며 살아왔던 이주상 부의장은 평소에도 평택이 발전의 호기를 맞고 있지만 교육 수준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어 아쉬움을 드러내며 평택시의 교육에 대한 예산지원 수준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도시발전에 있어 교육에 대한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도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구 증가가 필수적인데 삼성과 LG저자 등 대기업이 입주하고 주한미군 평택이전으로 인해 평택에 유입되는 인구가 정착으로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평택항 신생매립지 경계분쟁 승소 후 기념촬영(가운데)

■ 평택항 경계분쟁 승소, 간절한 꿈 이뤄
이주상 부의장은 평택항수호범시민운동본부 공동대표 자격으로 지난 2월 4일 평택항 매립지 경계분쟁에서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평택시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지켜보며 기뻐했다. 평택항 매립지를 되찾기 위해 20여년을 끌어왔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평택시사신문>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김찬규 평택항수호범시민운동본부 상임대표, 이동훈 경기도운동본부 사무처장과 함께 한 자리에서 경기도의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평택항매립지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던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경기도의회 재선 의원이자 부의장이었던 이주상 부의장은 평택항 문제를 다루는 경기도의회 평택항권광역개발추진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던 당시 현장답사를 가는 버스 안에서 의원들을 대상으로 평택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당진시 관할로 된 경계분쟁의 부당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해를 도왔고, 천안 상록연수원에서 1박 2일 동안 연수를 하는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며 평택항 행정구역의 평택시 지정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평택항경계분쟁연구회’ 회장을 맡았고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연구조직이 활성화되었다. 
이주상 부의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평택항매립지를 되찾은 것에 대해 “평택시의 내일을 생각할 때 평택시가 경기도뿐 아니라 전국에서 모범적인 지방자치단체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드는 전기가 될 것”이라며, “이런 전기를 놓치지 말고 평택시장이 앞장서고 경기도지사, 도민이 힘을 모은다면 우리의 앞날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평택시민의 결집된 의사를 더욱 확대하고 내일의 원동력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록 이주상 부의장은 영면에 들었지만 그분이 남긴 커다란 족적은 평택발전의 단초가 되어 길이 남을 것이다. 3월 28일 영면한 고인의 빈소는 평택중앙장례식장에 마련돼 지역의 많은 인사들이 그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3월 30일 오전 10시 열린 발인에는 정장선 평택시장과 김찬규 평택항수호범시민운동본부 상임대표, 이동훈 평택시발전협의회장, 이근표 전 평택시의회 의원, 김대식 평택항항운노동조합 위원장, 그의 영면을 안타까워하는 많은 인사들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 평택항 발전에 기여해 경기도지사 표창 수상(정장선 평택시장 전달)
▲ 평택지역 각계 인사의 추모 속에 진행된 이주상 전 경기도의회 부의장 발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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