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해왔듯 잘 모시겠습니다”

 

아름다운 동행 제1회 평택효부상 수상
한아름봉사회에서 봉사활동 지속해와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님을 모셨습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의 추천으로 효부상까지 받게 됐어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잘 모셔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공직에서 맺은 인연

평택시 안중읍 용성리에서 농사일을 하던 부모님 밑에 태어나 자란 조유희(62세) 전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한아름봉사회장은 고교 시절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졸업 후 곧장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에 현덕면사무소 지적계에서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문서를 모두 수기로 작성해 굉장히 힘들었어요. 주 업무였던 토지대장도 직접 수기로 써서 발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한자로 이뤄진 문서들로 인해 한자공부가 필수였다. 조유희 회장은 민원 업무를 잘 처리하기 위해 한자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얼마 후에는 평택군청 민원실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당시 부동산 붐이 일면서 민원이 굉장히 많이 발생했는데, 민원상담을 친절하게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그로 인해 제게 많은 민원인이 몰리기도 했었죠”

그는 당시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하던 동료와 서로 호감을 느꼈다.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도 당시 민원실에서 함께 일하며 만났습니다. 함께 근무하면서 민원인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고, 또 업무적으로도 함께 논의하는 일이 잦다 보니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됐죠”

 

한아름봉사회 활동

1981년 결혼 후 남편이 의정부로 발령받게 되자 공직을 퇴직한 조유희 회장은 4년 후 다시 평택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기 시작했다. 동시에 육아는 물론, 직장생활부터 장사까지 다양한 사회활동을 경험했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던 와중에 친구의 소개로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한아름봉사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쯤이었습니다. 먼저 활동하고 있던 친구가 있어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죠. 이미 남편을 따라 여러 차례 봉사를 다녔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조유희 회장은 한아름봉사회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어르신 식사 제공은 물론, 보육원 봉사활동, 수해복구, 빨래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무엇보다 장애인시설을 방문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이 그리웠던 아이들이 안아달라고 하고, 헤어질 때면 눈물을 흘리기도 했죠”

2015년에는 한아름봉사회 회장을 맡아 1년간 봉사회를 이끌기도 했다.

“한아름봉사회는 현재 30명의 회원이 활동 중인데, 평택지역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봉사회 중 한 곳입니다.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활동을 지속할 수 없게 되면서 매주 독거어르신 반찬배달 활동을 지속해서 전개하고 있죠”

회원들과 함께 봉사하며 공감과 소통으로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는 조유희 회장은 앞으로도 건강이 다할 때까지 봉사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효부상을 받다

조유희 회장은 결혼 이후 의정부에 가 있는 동안에도 수시로 평택을 오가며 시부모님을 살폈다. 시아버지가 병환을 앓았기에 평택에 있는 날이 더 많을 정도였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남편이 평택으로 발령받아 다시 내려오면서부터는 시어머님과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모시고 있죠”

이후 남편이 안성으로 발령받았을 때도 그는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계속 평택에서 살기로 했다.

“일할 때도, 봉사활동을 할 때도 시어머니가 끼니를 거르는 일은 없도록 했습니다. 때가 되면 집에 가서 식사를 챙기고 다시 나오곤 했죠”

남편이 장남이었기에 결혼할 당시부터 당연한 일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사실 힘든 점도 많았다.

“친정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셨는데, 괜히 걱정을 끼칠까 봐 친정 부모님을 생각해서 꾹 참을 때도 많았습니다. 혼자 눈물도 많이 흘렸죠”

그렇게 부모님은 항상 인생의 버팀목이 됐다. 조유희 회장은 지금도 안중에서 홀로 지내는 어머니에게 자주 연락하며 잘 모시고 있다고 한다.

“사실 저희 시어머님이 불같으셔서 친구분들께서 종종 ‘어떻게 모시고 사냐’는 농담을 듣기도 합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90세라는 고령에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 것이 기쁘죠”

조유희 회장이 시어머니와 함께 산지도 벌써 40년이 다 됐다. 인근에 사는 시동생들과 동서들이 많을 도움을 주고 있어 고맙다는 그는 무엇보다도 남편이 중간에서 역할을 잘했기에 고부갈등 없이 잘 지내왔다고 한다.

당연히 모셔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상까지 받게 돼 너무 감사하다는 그는 효부상 상금을 모두 독거어르신들을 위해 쓰이도록 기부했다. 무엇보다 시어머니가 건강하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도 잘 모시는 것이 조유희 회장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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