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만으로도
자극이 되는
기지촌역사기행이었다

 

▲ 남궁희수 목사
행복한사람들의교회

1986년 세워진 기지촌 여성인권운동 단체인 ‘두레방’은 사무국과 쉼터로 운영되고 있었다. 사무국이 위치한 뺏벌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부대가 들어오면서 규모가 커지고 부흥했지만,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한 뒤 현재는 휴업한 상점들과 과거의 흔적만 남아 있어 조용하고 오래된 골목길을 만날 수 있었다. 마을 이름인 ‘뺏벌’의 여러 유래 중 ‘한번 들어오면 발을 뺄 수 없는 곳’이라는 의미를 설명하면서, 이은우 평택시민재단 이사장은 당시 여성들의 삶과 닮았다며 가슴을 쓸었다. 그 운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단어가 여성들의 삶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그런 굴레를 벗어버리기 위해 애써 온 두레방이나 햇살사회복지회를 비롯한 여성들의 연대와 수고가 ‘뺏벌’의 새로운 의미로 새겨지고 있다고 생각됐다.

두레방을 나와 ‘효순미선 평화공원’에 도착했다.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에 치여 중학생 효순이와 미선이가 사망한 현장 위에 만들어진 추모의 공간이자 당시 시민들의 분노를 기억하고자 세워진 이 공원은 지난 6월 13일 완공식을 가졌다. 사고를 낸 미군 병사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모습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주한미군에 의한 범죄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 이후 끊임없이 있었고, 특히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범죄는 ‘윤금이 씨 사망사건’으로 크게 알려졌다. 자국민을 살해해도 처벌할 수 없는 불평등한 조약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기지촌 역사기행의 길에 멀리 돌아가면서도 이곳을 들리려던 주최자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남아 있는 이들의 일상 속에 이어가는 일을 본격화한 ‘턱거리마을박물관’은 평택에 ‘가칭 기지촌여성인권역사관’을 세우려는 추진단이 이 기행을 기획한 핵심적인 이유기도 했다. 동두천이 흐르는 캠프 호비 입구에 자리한 박물관은 기지촌이 번성한 당시 클럽이었던 곳을 재건축해 기지촌에 남아 있는 할머니들의 인생이야기를 기록 전시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고 함께 활동하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뭔가 희망적인 상상을 펼칠 수 있었던 박물관을 나와 찾아간 곳은 기지촌의 가장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기지촌 여성들이 무연고자로 묻힌 ‘상패리 공동묘지’ 언덕과 윤금이 씨의 집터 그리고 성병에 걸린 여성들을 감금하던 ‘낙검자 수용소’다. 풀이 무성한 언덕에 작은 봉분들 사이 비죽이 나온 검은 나뭇조각만이 그저 누군가의 무덤임을 알게 해줄 뿐이었다. 그 언덕이 끝을 알 수 없는 산으로 이어진다는 가이드분의 설명에 과거를 미루어 떠올려봤다.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그 시절 어리고 가난했을 여성들이 전쟁의 공포 가운데 번화한 기지촌에서 낯선 미군들을 통해 생계와 삶을 이어가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 여성들 스스로 꽃상여를 만들어 애도하며 보내줬을 슬픈 우정의 장례식 말이다. ‘성병관리’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벌인 폭력에 아무 힘도 없는 여성들이 창살에 갇혀 고통과 두려움 속에 죽어 나간 것을 알기에 더욱 슬펐을 것만 같다.

이번 역사기행을 통해 둘러본 지금의 기지촌은 내가 스무 살에 만난 윤금이 씨의 사진처럼 비참하거나 충격적인 장면은 없었다. 사람의 인생이 하나의 틀로 설명될 수 없듯이, 당시 기지촌에 살아간 사람들과 그 시절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할머니들, 그리고 그 안에 수많은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는 이웃과 어떤 오늘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번에 함께 한 사람들과 그 도전만으로도 자극이 되는 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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