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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지촌여성인권역사관’ 건립을 준비하다

기사승인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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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 역사기행,
상처와 치유를 위한 여정의 출발

 

기지촌여성인권역사관추진단, 6월 19일 역사기행
여성인권단체 두레방, 의정부 기지촌 역사 설명
의정부 뺏벌마을·동두천 턱거리마을 기지촌 탐방

 

평택시민재단과 햇살사회복지회는 ‘가칭 기지촌여성인권역사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지난 6월 19일 ‘첫 번째 기지촌 역사기행’을 떠났다. 의정부와 동두천 일대를 둘러본 이번 탐방에는 21명의 평택·서울·파주지역 시민단체 관계자와 시민이 함께 했으며, 이들은 하루 여정을 통해 쇠락한 기지촌 풍경을 눈에 담으며 기지촌 역사의 아픔을 공유했다. <평택시사신문>은 이들의 여정을 동행취재 해 특집기사를 보도함으로써 지역사회에 기지촌 역사에 대한 공감대와 역사관 건립 필요성을 확산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 기지촌역사기행단과 두레방 관계자들

 

아픔의 기억을 찾아서
평택과 의정부, 동두천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6.25한국전쟁 직후 주한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기지촌이 형성됐던 도시. 기지촌은 지역경제의 효자 역할을 했고, 이로 인해 한때 화려한 네온사인이 거리를 수놓았다. 평택 안정리와 송탄 신장동, 의정부 뺏벌마을, 동두천 보산동과 턱거리마을은 과거 기지촌으로 유명한 지역이었으며, 지금도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평택시민재단과 햇살사회복지회는 기지촌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번 역사기행을 추진했다. 이들은 기지촌이 과거를 넘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홀로 남겨진 여성들. 기지촌은 점차 그 자취를 감춰가고 있지만, 그들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지촌 역사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 아픔에서 비롯된다.
이번 역사기행이 단순히 기지촌의 흔적을 찾고 ‘기지촌여성인권역사관’을 건립하는 데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마련된 것만은 아니다. 이은우 평택시민재단 이사장은 여정을 시작하면서 “현재 추진 중인 기지촌여성인권역사관은 다른 지역에서도 관심을 두고 찾아오고, 어르신들이 직접 해설사로 활동하며 삶의 주체로 살아가게끔 지원하는 기관으로 건립할 계획”이라며, “오늘 역사기행은 기지촌여성인권역사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추진위원 간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기획했다”고 취지를 말했다.
의정부시 고산동 두레방에서 시작한 이날 기행은 인근 뺏벌마을과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효순미선 평화공원, 동두천시 광암동 턱거리마을박물관과 상패동 공동묘지, 보산동 외국인관광특구, 양주군성병관리소를 둘러보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일정 내내 뙤약볕이 함께 했지만, 새롭게 전해 듣는 기지촌 역사는 일행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두레방과 낙후된 기지촌 뺏벌마을
의정부시 고산동 수락산 자락 뺏벌마을 초입에는 과거 기지촌 성 산업에 유입됐던 고령의 기지촌여성들과 이주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 온 ‘두레방’이 위치해 있다. 마주하고 있는 콘크리트 벽과 철책은 이곳이 기지촌임을 실감케 했다.
두레방 활동가들은 기행단을 반갑게 맞이했다. 체온을 재고, 방명록을 작성한 뒤 김은진 두레방상담소 원장의 안내가 이어졌다. 김은진 원장은 “두레방은 문동환 박사의 아내 문혜림 여사가 기지촌 여성의 인권이 매우 열악한 상황을 보고 미국 장로교의 지원을 받아 1986년에 설립한 시설”이라며, “기지촌여성 지원 사업을 시작으로, 90년대 중반부터는 필리핀 등지에서 유입된 이주여성 지원 사업을 함께 펼쳐왔으며, 2006년부터 지금까지는 의정부시 성매매피해상담소 역할도 함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뺏벌마을 탐방이 이어졌다. 마을 명칭은 배나무밭에서 유래됐다고도 하고, ‘한번 들어오면 발을 뺄 수 없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도 전해진다. 마을은 1960년대 미군을 상대로 한 상점이 생겨나면서 만들어졌다. 기지촌이 들어서며 부흥기를 맞이했던 의정부 대표지역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캠프 스탠리에 주둔하던 미군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하고 난 뒤 과거 화려했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기행단이 찾은 뺏벌마을은 상점 대부분이 문을 닫은 상태였고, 간판에 적힌 영문자만이 기지촌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현재 토지주와 주민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데, 80년대 평택 안정리와 신장동을 떠올리게 하는 낙후된 모습이 마을의 속사정을 드러내는 듯했다.

   
 
   
 

 

두 소녀의 안식처, 효순미선평화공원
월드컵 열기로 전 국민이 달아올랐던 지난 2002년 6월 13일 두 소녀가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당시 월드컵만큼이나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고, 사고를 낸 미군이 미국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난 뒤에는 전국이 분노로 들끓어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올해 6월 13일 사고 지점 바로 옆 부지,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43-3번지에는 효순미선평화공원이 완공됐다.
효순미선평화공원은 미군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를 위해 민간의 힘으로 조성한 최초의 공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은 시설이다. 오로지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모금으로 조성됐으며,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에 공감하는 평택 시민단체와 개인의 참여도 이어졌다. 공원은 사고 현장에 벗겨진 운동화 모양으로 피우지 못한 두 소녀의 꿈을 담고, 그 꿈을 위대한 촛불의 힘으로 승화시켰다. 공원을 둘러싼 벽화에는 ‘효순이 미선이 사건’ 당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민중의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효순미선평화공원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지만, 혹시 모를 미군 사고와 마주했을 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었다.

 

   
 
   
▲ 동두천 턱거리마을박물관 생애사 기록 전시

 

공동체 회복의 노력, 턱거리마을박물관
동두천川을 사이에 두고 미 2사단의 주둔지 캠프 호비와 마주한 턱거리마을은 1954년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기지촌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마을에는 미군을 위한 클럽과 술집 등 유흥업소가 줄줄이 들어섰다. 캠프 호비에는 강한 전투력을 요구하는 미 2사단의 보병부대가 주둔했기에 마을에서는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기지촌여성이 죽고 나면 상패동 무연고 묘지까지 꽃상여가 나가곤 했는데, 그 수가 상당했다고 한다. 턱거리마을은 1980년대에 들어 쇠락의 길에 들어선 뒤 2004년 주둔 부대가 이라크 전쟁 현장에 투입되면서 더욱 빠르게 쇠락했다.
쇠락한 턱거리마을에 2019년 11월 문화예술 공간인 턱거리마을박물관이 들어섰다. 건물 주인의 협조와 경기도따복공동체,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턱거리마을박물관은 기지촌 역사를 복원해 현재의 문제를 성찰하고, 해체돼가는 지역 공동체를 되살리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운영 주체인 턱거리사람들협동조합은 박물관을 단순한 전시공간에서 나아가 마을해설사 양성과 예술프로그램 운영, 기지촌 역사 아카이브 거점으로 활용하는 등 3년 차 계획을 세워 추진 중이다. 기지촌여성인권역사관을 추진 중인 기행단에게는 민간이 주도한 선례인 만큼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평택의 경우 현재 과거보다도 훨씬 많은 미군이 지역에 유입되고 있는 만큼 더욱 광범위한 영역에서 기지촌 역사의 상처와 아픔을 공유하고, 기지촌여성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 동두천 소요산국민관광단지 주차장 옆에 위치한 양주군성병관리소
   
 

 

무연고 공동묘지와 몽키하우스
동두천시 상패동 무연고 묘지는 자연 발생 공동묘지다. 1000기가 넘는 묘 중 40% 이상이 무연고 묘이며, 60% 이상이 사망연도를 추정할 수 없는 상태로, 관리되지 않은 채 빽빽이 들어서 있다. 무연고 묘의 상당수는 동두천으로 유입됐던 기지촌여성의 것으로 추정된다. 몽키하우스로 불렸던 양주군성병관리소와 턱거리마을, 보산리 등 당시 기지촌에서 사망한 여성들이 이곳에 안장된 것이다. 사실 말이 공동묘지지 실상은 처참했다. 봉분은 무너져 내리고 묘비는 대부분 존재하지 않았으며, 간혹 지자체에서 실태조사를 위해 박아둔 나무말뚝이 묘비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기지촌 여성의 한이 서린 장소다.
흔히 낙검자수용소로 불리는 양주군성병관리소는 소요산국민관광단지 주차장 옆에 폐허로 방치돼 있다. 몽키하우스로도 불렸던 이곳은 기지촌여성을 감금했던 장소다. 당시 국가는 기지촌여성을 대상으로 성병을 관리한다는 미명 아래 수많은 여성을 감금했다. 더욱이 문제되는 점은 기준이 불명확한 단속으로 일반 부녀자가 끌려가기도 했다는 점이다. 기지촌여성들의 증언에 의하면 강압적으로 끌려온 여성들은 이곳에서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으며, 후유증으로 인해 허리가 굽기도 했다. 또 일부는 과민성 쇼크로 사망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기지촌여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양주군성병관리소에 강제수용됐던 57인의 청구를 인용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현재 양주군성병관리소 부지는 지역사회에서 활용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평화인권교육의 장, 기지촌여성역사관
햇살사회복지회는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기지촌여성생활터 공간의 활용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4월 24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종교인, 일반시민과 함께 모임을 갖고 기지촌여성인권역사관 건립을 추진키로 했다. 이날 역사기행은 이 계획의 일환으로 기획됐으며, 새롭게 구성된 기지촌여성인권역사관추진단은 향후 지속해서 건립 사업을 전개할 방침이다. 우순덕 햇살사회복지회 대표는 “턱거리마을을 보며 기지촌여성인권역사관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됐다”며, “오늘 역사기행에 참여한 한분 한분의 열정에 감사하고 앞으로 역사관 건립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추진단은 현재도 많은 주한미군이 평택에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지촌여성들의 가슴 아픈 역사와 삶을 기억하면서 평화인권도시 평택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가 모두 안고 가야 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평택지역사회도 군사주의 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여성의 피해와 구조적 문제가 더 이상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 의의를 두고 진정한 ‘평화인권도시 평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허훈 기자 ptsisa_hoon@daum.net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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