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5월 5일

1면 1교 보통학교 설립 축하 개최
3만여 시민 참여로 대성황 이루어

 

   
 

“진위군 교육회 주최(振威郡 敎育會 主催)로 一면 一교 완성 축하 연합대운동회(一面一校完成祝賀聯合大運動會)로 지난 五월 五일에 개최되었는데, 二천 아동의 연합대운동회는 진위군 내 十一교 연합체조(聯合體操)로 시작하여 폭죽(爆竹) 소리와 함께 막을 열었다. 이리하여 훈련(訓練)된 아동의 경기(競技)는 프로그램을 따라 진행되어 三만 관중의 환호 속에서 동일 오후 四시경에 대성황리에 막을 마쳤다.”(『매일신보』 1935년 5월 9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여느 나라보다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에는 그 교육열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였다. 일제강점 이후 제국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우민화정책에 따라 초등교육과 실업교육에 치중하였다. 그렇다 보니 교육에 목이 마를 수밖에 없었다. 제국일본은 1911년 ‘조선교육령’을 제정하면서 일왕에 충성하는 신민을 양성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렇지만 3·1운동 이후 교육열이 점차 높아짐에 높아감에 따라 ‘3면1교정책’에 따라 세 개 면을 기준으로 1개의 보통학교를 설립하고자 하였고, 1930년대에는 ‘1면1교정책’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각 면당 1개의 보통학교가 설립되기도 하였다. 평택은 1935년 5월을 전후하여 각 면에 1개의 학교를 설립하기로 함에 따라 이를 축하하기 위해 관내 11개 보통학교 학생들이 연합운동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연합운동회는 진위군교육회에서 주최하였으며, 1935년 5월 5일 2천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학생들의 연합체조로 서막을 연 연합운동회는 이어 폭죽을 터뜨리면서 개막을 알렸다.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운동경기는 알 수 없지만 오후 4시까지 이어졌다. 성황리에 마친 연합운동회는 평택 주민 3만여 명이 참여할 정도로 대규모였다.

이 시기 운동회가 대부분 그렇듯이 학생들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운동회였다. 구경하는 즐거움을 만끽한 연합운동회였다. 지금도 3만여 명이 한 곳에 모인다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연합운동회는 아마도 평택이 들썩이게 하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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