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여성 지원조례, 역사적 획을 긋는 일”

 

 

 

 

기지촌여성에 대한 인권문제 해결을 요구해 온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난 4월 29일 드디어 국내 최초로 경기도에서 ‘기지촌여성 지원조례’가 제정되는 결실을 거뒀다. 경기여성연대, 기지촌여성인권연대 등 15개 시민단체는 이날 경기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조례제정을 ‘역사적인 한 획을 긋는 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조례제정에 따라 기지촌여성들을 위한 지원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으며, 평택시에 거주하는 기지촌여성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평택시사신문>은 지난 2002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에서 ‘햇살사회복지회’를 설립하고 그늘지고 억압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기지촌 여성 노인들의 상처를 치유하며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력해 온 우순덕 대표를 통해 이번 조례제정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 ‘경기도 기지촌여성 등에 관한 조례’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 기지촌 여성노인들과 함께 한 지 만 18년이 됐다. 사회에서 소외와 차별을 당하면서도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그 덕에 ‘민간 외교관’, ‘애국자’라고 칭송까지 받았던 여성들이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공무원들을 찾아가 우리 기지촌 여성들의 노후를 도와달라고 호소했지만, 공무원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혜택을 드릴 수 있는 ‘법 조항’이 없어 특별히 도와 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2008년 즈음부터는 발표의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기지촌 여성 노인들을 도와드릴 수 있는 법 조항이 있어야 한다고 외쳐왔고 유관 현장단체들과도 함께 연대해 왔다.

2014년 2월 20일에는 경기도의회 차원에서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 간담회’에서 공식 거론됐고, 그 후 여러 의원들께서 간담회와 토론회를 통해 조례안을 검토하고 입법예고하는 등의 수고를 했다. 이런 노력을 토대로 경기도의회에서 6년여 만에 의미 있는 결실을 맺게 됐다. 이번 조례제정에는 기지촌여성인권연대가 주축이 됐고 경기여성연대도 합류했다. 기지촌 관련 현장단체는 ‘햇살사회복지회’와 ‘두레방’뿐이다.

 

- 이번 조례 제정에 대한 소감을 말해 달라.

= 1992년 주한미군에 의한 기지촌여성 살해사건인 ‘윤금이 사건’ 이후 기지촌여성 인권문제가 참으로 긴 세월을 거쳐 이번에 경기도 조례의 형태로 하나의 매듭을 짓게 되는 역사적인 의미가 남다르다. 이번 조례가 다소 미비한 점은 있지만, 진전된 기지촌여성 인권회복 역사의 첫 걸음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이번 조례 통과를 환영한다. 

더불어 전국 최초로 통과된 이번 조례를 계기로 전국에 산재했던 기지촌 소재 지자체들에서도 유사한 조례제정, 그리고 제21대 국회에서도 기지촌 여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길 소망한다.

 

- 기지촌여성들의 인권유린 부분에 대해 설명한다면.

= 1970년대 정권은 한·미 관계를 우호적으로 회복하고 한국의 안보를 유지하고자 ‘기지촌 정화위원회’를 만들었다. 미군들에게 기지촌 여성들이 ‘깨끗이 받쳐지도록’ 성병검진을 받도록 하였다. 한국정부는 기지촌 미군 위안부들의 성병관리를 위해 의무적으로 등록하게 하고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관리하였다. 낙검이 되면 수용소, 일명 ‘몽키하우스’로 가서 갇혀 지내도록 했다. 

기지촌 여성들은 ‘달러’의 도구였고, ‘안보’의 도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기지촌 여성 개인의 안보는 국가로부터 보장받지 못했다. 성병관리를 받는 와중에 과도한 페니실린 주입으로 죽거나 부작용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많았다.

기지촌 여성들은 쉽게 폭력에 노출됐고, 살인도 당했고, 혼혈아를 낳았고, 때론 버림받으며 살아왔다. “외화를 많이 벌어라”, “애국자다”, “나중에 나라가 잘 살게 되면 특별히 대우 해 주겠다”고 교육시켰던 정부는 지금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경기도가 나서서 조례를 제정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보인다. 경기도에서 이재명 도지사의 강력한 의지로 뒷받침 해주고, 끈기 있게 이끌어준 박옥분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 위원장과 대표발의 한 김종찬 도의원께 감사드린다.

 

- ‘경기도 기지촌 여성지원 등에 관한 조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 조례에는 ▲기지촌 여성의 복지향상과 생활안정을 위한 경기도지사의 책무 ▲경기도 기지촌여성지원위원회의 설치와 기능 등에 관한 사항 ▲조례에 따른 지원대상자, 지원내용, 지원신청, 환수 등에 관한 사항 ▲임대보증금 지원, 임대주택의 우선공급, 생활안정지원금 지급, 의료지급, 간병인 지원, 장례비 지원 등이 담겨 있다. 

 

- 그동안 많은 활동을 해오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2014년 6월 25일 기지촌 여성들이 유관단체들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국가의 기지촌 운영과 관리 과정에서 성매매 조장행위와 위법한 강제 격리 수용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며 소송한 모든 기지촌여성들에게 손해배상으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던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면, 우리 햇살사회복지회 기지촌 여성들이 많은 활동가들의 협조로 연극 ‘숙자이야기’와 뮤지컬 ‘그대 있는 곳까지’를 공연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가진 간담회에서 나눴던 얘기는?

=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지촌 여성에 대해 지금까지 관심이 적었고 실질적 지원이 부족했다. 집단적 여성 인권 침해사례로 기지촌 여성들을 들 수 있을 텐데, 꽃다운 청춘들에게 인권 침해를 강요했다. 국가가 방조, 조장, 책임이 있고 부당한 피해를 입혔다. 이들에 대한 실상, 실태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다시는 이런 집단적, 개별적 특히 국가가 행한 인권침해가 없어야 한다. 가능한 지원을 하겠다”라며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다.

 

- 평택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보건소에서 성병에 대해 철저히 잘하라고 하는 교육이 있었지. 안정리 어디에 모이라 해. 지역 유지들이 국회의원 출마하고 그럴 때… 그 터(현재 안정순복음교회 터)가 넓거든, 나이 들면 갈 때 없으니까 거기다가 9평짜리 아파트라도 지어줘서 들어가게 한다고 약속했어요. 우리가 외화 벌어서 지어주겠다고 했는데…”라고 증언한 할머니들이 여러분 계신다.

그러나 한때 국민총생산의 25%를 차지하며 지역경제의 60%이상을 부양한 우리 기지촌 할머니들을 위한 예산은 없다. 민족적 망각과 역사적 왜곡 속에서 방치됐을 뿐 아무런 대책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번 경기도 조례제정을 기점으로 앞으로 의정부, 동두천, 파주, 부산, 군산 등 전국에 산재했던 미군 기지촌 소재지에서도 유사 조례안 통과사례가 들불같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특별히 미군부대가 많이 주둔하고 있는 평택에서도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조례가 제정되기를 소망한다. 지난달에도 할머니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기지촌 할머니들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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