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화 널리 전파하는 것이 목표”

예술작품으로 ‘지화’ 새 지표 열어
소실된 지화 복원, 또 하나의 목표

 

 

“전통 ‘지화紙花’를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지화는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기나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완성했을 때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죠”
1982년 17세가 되던 해에 중학교를 졸업한 뒤 충청북도 단양 구인사에서 부처님께 귀의한 석용 스님은 이때 처음으로 지화를 배우게 됐다고 한다. 천태종 제17대 총무원장을 지낸 춘광 스님으로부터 지화를 전수받은 석용 스님은 그 매력에 사로잡혀 더욱 연구에 매진했다. 손가락이 끊어질 듯한 고통에도 지화에 매진한 것은 아마도 꽃을 꺾는 것도 살생이라 여겨 한지로 꽃을 만들어온 불가의 생명존중 사상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불가에 귀의하다
석용(52) 스님의 아버지는 천태종 중창조인 구인사 상월 스님과의 인연으로 강원도 삼척에서 충청북도 단양으로 내려와 스님의 이발을 도맡았다고 한다.
“부친이 상월 스님과의 인연으로 단양에 자리를 잡으셨고 스님께서 직접 부친과 모친의 연을 맺어주셨어요. 당시 서른이 넘은 나이였던 부친이 노총각으로 혼자 지내자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상월 스님께서 당시 18세였던 저희 모친을 소개한 것이죠”
이처럼 스님의 소개로 연을 맺은 부모님을 따라 석용 스님도 자연스럽게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절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17살이 되던 해에 출가를 결심하고 구인사에 발을 들였죠.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절에서 생활을 시작한 석용 스님이 처음 배운 것은 연등을 만드는 일이었다.
“출가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흔히 부처님 오신 날이라 하는 초파일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때 행사에 필요한 연등을 만들었던 것이 지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죠”

종교·예술·문화를 아우르다
석용 스님은 이후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장엄분야 보유자인 태고종 장벽응 스님과 정지광 스님을 만나 영산재 장엄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불가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84년에 장벽응 스님과 인연이 닿아 지화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의식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3년 후인 1987년에는 장벽응 스님의 제자인 정지광 스님께서 장엄을 사사해주셨는데 이때부터 제가 지화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어요. 제가 소질을 보이자 정지광 스님께서도 격려해주셨고 더욱 지화에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석용 스님은 1990년부터 윤달이 드는 해마다 단양 구인사에서 영산재를 지내오며 전국 각지에서 장엄을 치러왔다. 많은 의식에서 지화를 선보이자 그의 작품을 알아보는 이들이 서서히 늘어났다고 한다. 그는 2006년 오로지 자신이 만든 지화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서 장엄을 치렀는데 제 지화 작품을 알아보는 분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저 자신도 느끼게 됐고 전시회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8년도에 서울 관문사 성보박물관에서 ‘마음을 피우는 꽃’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 것이 제 첫 전시였죠”
석용 스님의 이러한 도전은 원래 의식에만 사용해온 지화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탄생시킨 첫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다
석용 스님은 2001년부터 덴마크에 지화를 보급해왔다. 이때 덴마크에 있는 한인 입양인들을 돕기 시작하면서 재외동포재단과 인연이 닿았는데 이들의 추천으로 한미예술문화재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뉴욕과 메릴랜드주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또 현지에서 학생들에게 지화를 가르치기도 했죠. 당시에 마크 장 메릴랜드주 하원의원에게 감사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외에도 지화의 아름다움을 전하며 한국의 예술을 널리 알려온 석용 스님은 2011년과 2014년 두 번의 고배 끝에 지난해 11월 경기도무형문화재 제63호 지화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노력해온 것들을 인정받아 기쁘면서도 앞으로 지화를 더욱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원래 불교에 전해지는 지화는 58종이 존재했는데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20여 종만이 남아있습니다. 이것들을 복원하는 것도 앞으로 제가 할 일이죠”
지화는 의식에 사용한 뒤 불태우기 때문에 자료가 대부분 소실돼 옛 문헌이나 감로탱화를 토대로 복원해야 한다. 한지를 잘라 꽃을 접고 천연물감으로 색을 입히는 과정도 엄청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데 옛 문헌과 그림만을 보고 지화를 복원하는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인내가 따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실된 전통 지화를 복원한다면 석용 스님이 무형문화재 보유자로서 한 단계 더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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