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7월 1일

모유 부족해 스트레스 받아
아이를 던지고 자신도 빠져

 

“진위군 청북면 어시리(振威郡 靑北面 魚市里)에 사는 김진철(金鎭喆)의 처 이씨(李氏, 29)는 작년 중에 애를 낳았던 바, 젖(乳)이 적음으로 자기 집 후위에 단을 묻고 지성으로 공을 드리다가 너무나 정신에 도취되었음인지 그때부터 정신에 이상이 생기어 늘 고통하여 오다가 수원읍 북수리(水原邑 北水里)에 있는 불립교회(佛立敎會)에 (중략) 그 절 우물에 던지고 자기도 같이 들어가 있는 것을 자기 시모(媤母)가 발견하고 즉시 구완하여 내어다 놓고 본즉 어린 아이는 벌써 절명이 되고 전기 이씨는 그대로 살아있으므로 어찌할 줄 모르던 차, 당지 경찰서에서 알고 즉시 그 여자를 검거하여 엄중히 취조하는 중이라고 한다.”(『매일신보』 1933년 7월 5일)

요즘은 아이를 기르면서 모유(母乳)를 반드시 먹이지 않지만, 예전에는 아이를 기르는데 기장 필요한 것이 모유였다.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모유로 성장했다. 모유가 부족한 어머니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한다. 그래서 모유가 부족한 어머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모유량을 늘리기도 한다. 사골육수나 돼지 족을 고아서 먹기도 했다. 1933년에 모유가 부족한 어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이 평택에서 있었다.

당시 청북면 어소리에 사는 이 씨라는 여성이 아들을 낳았지만 모유가 부족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집 뒤에 조그마한 단을 묻고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하던 중 너무 심취해 정신에 이상이 온 것이다. 정신 이상으로 아이도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고 일상에서도 고통을 받던 이 씨는 수원 북수리에 있는 한 불립교회 즉 절에 가서 치성을 드리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을 듣고 시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그곳에서 열심히 기도를 했다. 그러던 중 1933년 7월 1일 새벽 3시경 다시 정신이상이 발병해 두 살 된 아들을 우물에 던지고 자신도 우물에 몸을 던졌다.

한동안 며느리의 인기척이 없자 며느리를 찾던 시어머니는 우물에 이 씨가 빠져있는 것을 보고 급히 구했지만, 아이는 벌써 싸늘하게 죽어 있었고 며느리 이 씨만 살아남았다. 병을 고치러 갔다가 오히려 화를 당한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에 사찰이 ‘불립교회(佛立敎會)’라는 용어로 불렸다는 점이다. 아마도 절을 교회로 표현한 대치어가 아닌가 한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