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1월 19일

세 배 크기로 짓게 돼
주변 창고 강제로 수용

 

 

 

“철도국에서는 이미 공사에 착수한 경부본선 복선공사가 대전(大田), 경성(京成) 간에 거의 반 이상의 준공을 보게 되었는데 평택(平澤), 성환(城歡) 간은 그중 제일 늦은 모양이라 하면서 지난 十九일에는 철도국 기사가 내평하여 관계자 다수를 초집하고 공사에 반한 용지 내 입퇴를 명령하였다는데, (중략) 또 역의 승격문제는 아직 이른 모양이나 천안(天安), 수원(水原) 간에서는 제일 큰 정거장이 될 것이라 한다”(『동아일보』 1938년 1월 29일)

요즘의 역사(驛舍)는 복합쇼핑몰의 형식을 갖추어가고 있는 것이 일종의 ‘트랜드’가 아닌가 한다. 예전에는 단순히 승객이 타고 내리고, 화물을 운반하는 역(驛)으로서의 기능이었지만, 근래 들어서는 쇼핑뿐만 아니라 문화 공간 등을 갖추는 종합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공간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평택역도 예전에는 단순 역사(驛舍)의 기능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역 기능 외에 식당, 백화점, 영화관, 서점, 문화시설 등 다양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요즘에는 역세권이라는 사회경제적 공간이 형성되고 있다.

옛 평택역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1905년 개설한 평택역은 1938년 들어 대대적으로 확장되었다. 기존의 역보다 3배 정도 확장되었고, 수원과 천안 구간에서 제일 큰 역사로 확장되었다. 당시 신문기사에 의하면, 역사를 확장하는데 애로가 많았다. 역사가 들어설 공간의 건물 매입이 해결되지 않아 철도국에서 파견되어 사실상 강제적으로 수용당할 처지에 놓였고, 평택역 주변에는 커다란 창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평택역이 확장됨에 따라 도로가 새로 생기에 될 정도로 큰 변화가 뒤따랐다. 흥미로운 것은 역을 중심으로 동서를 잇는 방법으로 지하도를 할 것인가, 구름다리로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는데, 예산상 구름다리로 넘나들게 하였다. 이 구름다리가 언제까지 유지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의 구름다리를 건너던 기억들이 남아 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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